이 영정각은 1964년 4월 양성이씨 17세 한계공 이익주의 영정을 봉안하고 복원 건립하였다.
이익주는 [1634년(인조 12)~1704(숙종 30)] 증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행통정대부 해주목사. 해주진병마첨절제사. 오위장을 지냈고 자는 문보(文甫), 호는 한계(閒溪)이다.
향학에 다닐 때 과시 3장에 3장 장원. 1660년 증광진사시에 합격. 1664년 태릉참봉이 되고 이 해 모친의 전염병을 간호하면서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 봉양했고 돌아가신 후 10년간을 관혼상제등 몸소 살림을 하면서 부친에 효도를 다했다.
1675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 시묘를 마치고 1682년 효행·재행으로 종부시 주부. 형조좌랑 공조정랑에 오르고 1688년 호조정랑이 된 후 기사환국으로 두문불출하다가 1694년 장례원 사의에 오르고 안악군수로 부임하면서 치적이 훌륭하여 안악 사람들이 은덕을 잊지 못하여 송덕비를 세워 그의 화상을 새기고 제사까지 받들었다.
또한 군내에서 생사당을 군민이 모셨는데 후일 영정을 양평 가묘 사당으로 옮겨 봉안했다. 뒤에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1964년 4월 영정각을 복원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향사는 음력 10월 첫 일요일이다.